파르크 쿨투리역 (소콜니체스카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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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르크 쿨투리역 (소콜니체스카야선)은 러시아 모스크바 지하철 소콜니체스카야선의 역이다. 1935년 5월 15일에 개통되었으며, 모스크바 지하철 최초의 영업 구간 중 하나에 속한다. 건설 당시에는 모스크바강과 가든 링이 교차하는 지점에 위치하여 공사 난이도가 높았으며, 고대 그리스 양식에서 영감을 받은 디자인으로 건설되었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을 기념하여 역명이 변경되었으며, 2010년 3월 29일에는 테러 공격을 받아 4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현재는 콜체바야 선의 파르크 쿨투리 역으로 환승할 수 있으며, 역명은 인근 고리키 공원의 약칭에서 유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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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크 쿨투리역 (소콜니체스카야선) - [지명]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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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정보 | |
기본 정보 | |
역 이름 | 파르크 쿨투리 |
로마자 표기 | Park Kultury |
유형 | 모스크바 지하철 역 |
주소 | 오스토젠카 거리 하모브니키 구 중앙 행정 오크루그 모스크바 러시아 |
좌표 | 55.7356, 37.5943 |
노선 | 소콜니체스카야 선 콜체바야 선 (환승역: 파르크 쿨투리 역) |
다른 노선 | 트롤리버스: Б (B), 10, 28, 31, 31к, 79 |
구조 | 얕은 기둥 트리플 스팬 |
승강장 | 1개 섬식 승강장 |
깊이 | 10.5m |
층수 | 1층 |
선로 수 | 2개 |
주차장 | 없음 |
자전거 보관소 | 없음 |
개업일 | 1935년 5월 15일 |
폐쇄일 | 해당사항 없음 |
재건축 | 해당사항 없음 |
전철화 여부 | 해당사항 없음 |
접근성 | 해당사항 없음 |
역 코드 | 013 |
소유주 | 모스크바 메트로폴리텐 |
이전 이름 | 1935–1980년: 중앙 고리키 문화 휴식 공원 (Tsentralnyi Park Kultury i Otdykha imeni Gorkovo) |
승객 수 | 3,650,000명 (2002년) |
인접한 역 | |
소콜니체스카야 선 | 이전 역: 프룬젠스카야 다음 역: 크로포트킨스카야 |
콜체바야 선 | 이전 역: 옥탸브리스카야 역 다음 역: 키옙스카야 역 |
2. 역사
1933년 봄에 역 건설이 시작되었다. 이 역의 건설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분명했다. 모스크바강 둑에서 불과 수백 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하여 토양이 특히 습했고, 지하수위가 역의 미래 천장보다 높았다.[1]
더욱 중요한 것은 이 역이 가든 링이 남서쪽 오스토젠카 거리/콤소몰스키 대로와 교차하는 지점의 크리미아 광장(크림스카야 플로샤드) 아래에 위치하여 중요한 교통 허브라는 점이었다.[1] 역의 구덩이가 미래 둘레를 따라 굴착되기 전에, 그 사이에 코킹된 틈이 있는 튼튼한 통나무로 보강된 금속 주물이 땅에 박혔고, 구덩이가 필요한 깊이로 천천히 굴착되면서 심해 수위 감소가 사용되었다.[1] 이 모든 것은 침강을 일으키고 심지어 인근 주택의 파괴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 구덩이의 침수를 방지하기 위해 필요했다.[1] 그러한 작업이 완료되자마자 교통 방해를 막기 위해 가교가 가로 수준에 세워졌다.[1] 건설의 대부분은 밤에 수행되었다.[1] 이 역은 11개월 만에 완공되었으며, 이 기간 동안 10만 입방 미터의 토양이 구덩이에서 제거되고 2만 5천 입방 미터의 콘크리트로 대체되었다.[1]
이 역은 플랫폼 위에 네 개의 보도가 있는 2층 기둥-트리스팬이다.[1] 건축가 크루티코프와 포포프는 고대 그리스 요소에서 영감을 얻은 장식을 선택했다.[1] 플랫폼을 따라 22개의 기둥이 두 줄로 늘어서 있으며 크리미아 대리석 ''카디코프카''로 마감되었고 성형된 주두로 덮여 있다.[1] 벽을 따라 짙은 장미색 모자이크 벽기둥 세트가 기둥의 단계를 반복하며(7미터마다), 벽의 나머지 부분을 마감하는 자기 타일과 매우 잘 어울린다.[1] 또한, 짙은 갈색 모자이크 소클이 플랫폼 아래 레벨을 따라 양쪽 벽을 따라 흐른다.[1] 총 1500제곱미터의 대리석과 200제곱미터의 자기 타일이 장식에 사용되었다.[1]
대합실로 이어지는 보도는 붉은 금속 플라스틱 타일과 대리석 난간이 있는 성형된 흰색 난간으로 개별적으로 장식되어 있다.[1] 대합실로 이어지는 복도 벽은 흰색 우랄 ''코엘가'' 대리석으로 덮여 있다.[1]
이 역에는 원래 두 개의 대합실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오스토젠카 거리와 노보크림스키 골목길 사이의 모퉁이에 있는 독특한 로툰다 건물이다.[1] 두 번째 대합실은 콤스몰스키 대로와 사도보예 콜초의 모퉁이에 있었다.[1] 매표소는 갈색 우랄 ''우팔레이'' 대리석으로 마감되었고 흰색 ''코엘가'' 대리석으로 마감된 4개의 용접된 팔각형 기둥이 있었다.[1] 매표소 자체는 광택 처리된 참나무로 만들어졌다.[1] 이 대합실은 더 큰 대합실이 그 자리에 세워지고 오래된 복도가 거기에 통합되었을 때인 1949년에 철거되었다.[1] 또한 이 대합실은 1950년에 개통된 콜체바야선으로의 환승을 제공한다.[1]
이 역은 개통 이후 거의 변하지 않은 첫 번째 단계에서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역 중 하나이다(루비얀카] 또는 치스티예 프루디)에 비해) 플랫폼을 원래 아스팔트 대신 화강암으로 표면 처리하고 새로운 조명을 설치한 것을 제외하고.[1] 후자는 중앙 경간에 아름다운 샹들리에와 측면 내부에 밀키 화이트 유리로 만든 반원형 램프로 구성되었다.[1] 그러나 형광등이 도입되면서 샹들리에와 내부의 램프가 완전히 제거되었다.[1]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조명 설비는 건축 구성에 잘 맞았고 키예프스카야와 같이 어색해 보이지 않았다.[1]
1935년 5월 15일에 개통했다. 소콜니키 역 - 당역 구간은 모스크바 지하철 최초의 영업 구간이다. 1950년 1월 1일, 순환선·파르크 쿨투리 역과의 연결을 시작했다.[1]
1935년에 이 역이 개통되었을 때, 첫 번째 단계의 프룬젠스키 지선의 종착역(1938년부터는 키롭스코-프룬젠스카야선)이기도 했다.[1] 계획에는 이 역에 4개의 트랙 반전 측선이 있을 예정이었지만, 1937년까지 완료되지 않았고, 대신 플랫폼 앞에 임시 피스톤 분기점이 설치되어 열차의 반전을 허용했다.[1] 이 역은 1957년 프룬젠스키 반경이 남서쪽으로 스포르티브나야까지 확장되면서 종착역이 아니게 되었다.[1][1]
2010년 3월 29일, 이 역은 루비얀카와 함께 테러 공격을 받아 40명의 사상자를 냈다.[1]
2. 1. 역명 변경
1935년 5월 15일 모스크바 지하철이 처음 개통될 당시 역의 초기 이름은 '''첸트랄니 파르크 쿨투리 이 오티하 이메니 고리코보'''(Центральный парку культуры и отдыха имени Горькогоru)였다.[1] 이 역명은 '''고리키 중앙 휴식 문화 공원'''을 의미하며, 인근 공원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1] 하지만 실제로는 약칭인 체페카이오(ЦПКиО)나 고리키 문화공원으로 불렸다.[1]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을 기념하여 역명은 간단히 "문화 공원"으로 변경되었으나, 일부 표지판이나 옛 시설에서는 여전히 긴 이름을 찾아볼 수 있다.[1]2. 2. 테러
2010년 3월 29일 체첸 독립주의자들에 의해 자살폭탄테러가 일어났다. 이 사건으로 40명이 사망하고 80명 가량이 다쳤다.3. 역 구조
3. 1. 건설 과정
1933년 봄, 역 건설이 시작되었다. 모스크바강에서 가까운 위치와 가든 링이 교차하는 크리미아 광장 아래라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토양은 습하고 지하수위가 높아 어려움이 예상되었다.토양 침수와 주변 건물 붕괴를 막기 위해 금속 주물을 땅에 박고, 심해 수위 감소 기술을 사용했다. 교통 방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가교를 설치하고, 대부분의 작업을 밤에 진행했다. 11개월 만에 역이 완공되었으며, 10만 입방 미터의 토사를 제거하고 2만 5천 입방 미터의 콘크리트를 사용했다.
역은 고대 그리스 양식에서 영감을 받아 설계되었다. 플랫폼에는 크리미아 대리석 ''카디코프카''로 마감된 22개의 기둥이 두 줄로 늘어서 있다. 벽에는 짙은 장미색 모자이크 벽기둥이 기둥과 조화를 이루며, 짙은 갈색 모자이크 소클이 플랫폼 아래 벽을 따라 이어진다. 총 1500제곱미터의 대리석과 200제곱미터의 자기 타일이 사용되었다.
대합실로 이어지는 보도는 붉은 금속 플라스틱 타일과 대리석 난간으로 장식되었다. 복도 벽은 흰색 우랄 ''코엘가'' 대리석으로 덮여 있다. 원래 두 개의 대합실이 있었으나, 1949년에 하나는 철거되고 더 큰 대합실이 건설되었다. 이 대합실은 1950년에 개통된 콜체바야선과의 환승 통로 역할을 한다.
개통 초기에는 아스팔트였던 플랫폼 바닥은 화강암으로 교체되었고, 새로운 조명이 설치되었다. 초기에는 중앙 경간에 샹들리에와 반원형 램프가 있었으나, 형광등 도입으로 제거되었다. 새로운 조명은 건축 구성과 잘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는다.
1935년 개통 당시에는 프룬젠스키 지선(이후 키롭스코-프룬젠스카야선)의 종착역이었으나, 1937년까지 반전 측선이 완공되지 않아 임시 피스톤 분기점이 사용되었다. 1957년 스포르티브나야 역까지 연장되면서 종착역 기능을 상실했다.
개통 당시 역명은 '''첸트랄니 파르크 쿨투리 이 오트디하 이메니 고르코고'''(막심 고리키 중앙 문화 및 레저 공원)였으나, 1980년 올림픽 경기를 계기로 짧게 변경되었다.
2010년 3월 29일, 테러 공격의 대상이 되어 4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1]
4. 환승
이 역에서는 콜체바야 선의 파르크 쿨투리 역으로 갈아탈 수 있다.
5. 위치
모스크바강을 사이에 두고 고리키 공원 바로 맞은편에 있다. 역명은 공원의 정식 명칭인 "막심 고리키 기념 문화 휴식 중앙 공원"(Центра́льный парк культу́ры и óтдыха и́мени Макси́ма Гóрького)의 약칭인 "문화 공원"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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